"보통 인간+AI 조합은 효율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AI를 더 잘 쓰면 더 잘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SW스타트캠프 강의를 들으면서 그 이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AI 도구를 쓰는 것과 AI와 제대로 협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요구사항 도출,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
강의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한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도메인 지식이 없으면 통찰을 얻을 수 없다." 여기서 도메인 지식이란 특정 산업이나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뜻합니다. 단순히 코드를 짜거나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실제 현장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습니다. 구글 클라우드 기반 AI 프로젝트에서 상수관로 건강도 평가 대시보드를 개발할 때의 일입니다. 팀은 처음에 모델 정확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저도 웹 크롤링과 데이터 전처리 파이프라인 구축에 매달렸고요. 그런데 현업 담당자와 미팅을 거듭하면서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분이 원하는 건 정확도 높은 AI 모델이 아니라, "어떤 구간 관로부터 점검해야 하는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개발자는 모델 성능 지표를 말하고, 현업은 업무 활용성을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AX(AI Transformation)란 개념이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와닿았습니다. AX는 단순히 종이를 PDF로 바꾸거나 클라우드에 올리는 DX(Digital Transformation)와 다릅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과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지능화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클라우드에 데이터 쌓았다"가 DX라면, "그 데이터로 내일 뭘 해야 할지 AI가 판단하고 자동으로 움직인다"가 AX입니다.
이 구조를 강의에서는 Data → Insight → Value로 표현했습니다. 제 프로젝트 경험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상수관로 데이터(Data)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메인 지식 없이는 어떤 데이터가 위험 신호인지 해석할 수 없었고(Insight 실패), 결국 현업에서 쓸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올 뻔했습니다(Value 미달). 다행히 요구사항을 기능 단위로 세분화하고, 위험도를 등급화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대시보드를 재설계하면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요구사항 분석 단계에서 놓치기 쉬운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같은 요구사항을 10명이 들어도 해석은 10가지 이상으로 나뉠 수 있다
-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늘어날수록 요구사항은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기 쉽다
-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그 기능이 해결해주는 문제다
- 스펙(Spec)이 불명확하면 개발 일정 단축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리스트가 당연해 보여도, 실제 프로젝트에서 지키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저는 이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AI 협업과 소프트 스킬, 기술만으론 부족한 이유
"인간+AI가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는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제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AI 도구를 처음 쓸 때 저는 "코드 작성해줘" 수준의 프롬프트를 던졌습니다. 결과물은 쓸 수는 있었지만, 우리 프로젝트에 딱 맞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정하고, 다시 물어보고, 또 수정하다 보니 오히려 직접 짜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환점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을 제대로 이해하면서부터였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생성형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입력 문장을 설계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강의에서 소개한 프롬프트 구성 요소의 중요도는 제가 체감한 순서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목표(Task), 그다음이 맥락(Context), 그리고 예시(Exemplar)였습니다.
실제로 "React 기반 대시보드에서 관로 위험도를 시각화하는 컴포넌트를 작성해줘. 사용자는 공공기관 담당자이며, 색상 기반 위험도 구분이 필요하다"처럼 맥락을 구체적으로 넣었을 때 결과물의 품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페르소나(Persona)를 설정하거나 예시를 함께 제공하면 AI의 답변 톤과 구조도 훨씬 적절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시각도 있습니다. AI를 잘 쓰면 누구나 효율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개발자 역량 자체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전자신문). 도메인 이해와 문제 정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AI 도구를 쓰면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셈이 됩니다. AI가 틀린 방향을 더 효율적으로 실행해줄 뿐이니까요.
팀 프로젝트에서는 소프트 스킬의 무게감도 크게 느꼈습니다.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란 기술적 역량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이나 공감, 리더십처럼 인간관계와 협업에 필요한 능력을 말합니다.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PM이 함께하는 팀에서는 기술적 우위보다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충돌을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데이터와 근거를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의 기준을 팀이 공유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AI 거버넌스(AI Governance)의 중요성도 강의에서 짚어줬습니다. AI 거버넌스란 AI 시스템이 윤리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관리하는 체계를 뜻합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해진다는 점에서, 기술자에게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AI 관련 정책 수립과 거버넌스 체계 강화를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AI 모델을 잘 만드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고, 데이터에서 가치를 끌어내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실제 서비스로 연결하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기술 역량과 함께 요구사항 분석 능력, 도메인 이해, 그리고 협업 능력을 함께 키워가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AI가 강해질수록, 그것을 제대로 방향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의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